칼럼

제목 <야곱의 허리>로부터 왕(생명)들이 나오다-창 33:18-20; 34-35장 김이곤 2012-11-282021-10-20 14:56

<야곱의 허리>로부터 왕(생명)들이 나오다

창 33:18-20; 34-35

 

야곱(이스라엘)의 유랑생활에 관한 보도의 실질적인 은 밧단아람(외삼촌댁이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한 마을)에서 지낸 피신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그 고향 어구인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의 씨름이라는 매우 특수한 신체험(神體驗창 32)을 거친 후마침내형과의 극적인 화해(和解)/해후(邂逅)를 하는 데에서(창 34이루어진다그가 형과의 극적 만남[劇的 邂逅]를 끝내고 처음 자리 잡은 곳이 <세겜땅이었다그는 세겜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을 친 그 터를 그 곳 추장으로부터 은 백 냥(크시타=10세겔=정확한 액수 불확실)을 주고 사들였다말하자면 세겜 땅은 야곱(이스라엘)이 원주민으로부터 적정 값을 지불하고 합법적으로 매입(買入)한 <야곱(이스라엘)의 땅>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고 하겠다(창 33:18-19).

이 시점에서야곱(이스라엘)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외쳤던 신앙고백이 또한 신학적으로 매우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하겠다즉 그는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외쳤는데(창 33:20), 번역하면, “(하늘님)은 이스라엘의 엘로힘(하나님)이다.”라는 말인데이 말의 의미는 가나안 족이 섬기고 있고 또 중동의 셈 족()이 널리 그들의 신의 이름으로 불렀던 그 <>()이라는 신(하늘님/하느님)은 알고 보니 이스라엘의 신()이신 <엘로힘>(하나님)이었구나라고 하는 [=엘로힘이라는의미이다한국적인 상황으로 풀이하다면한국인들이 전래적(傳來的)으로 믿어 왔던 <하늘 님(하느님)>은 알고 보니한국의 기독교인이 믿는 바로 그 <하나님>이었구나 라고 하는 새로운 각성(覺醒)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진정한 신참 신인류의 보편적 신앙의 대상인 신그 신(, practical/implicit monolatry, cf. 족장시대)이 다름 아닌 기독교의 유일신인 하나님(theoretic/explicit monotheist God, cf. 이사야)과 다른 신은 아니었구나! 라고 하는 의미(practical/ implicit monotheism)의 말이 된다고 하겠다즉 실제적이고도 암묵적인 그 보편적 한 분 하느님은 교리(이론)적이고도 신학적으로 정련된 그 오직 한 분의 하나님과 결코 다른 신()은 아니었다는의미가 된다고 하겠다실로이것은 야곱이 그의 험악한 세월”(창 47:9)을 지내오면서 겪은 삶의 체험을 통하여 깨달은 신앙의 한 결과를 이러한 각성(覺醒)의 결실(結實)로서 정리한 것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은 진실로 
신속하게 지나가시는 신’(elusive presence, 출 33:19a,22; 출 34:6a)으로서 자신을 감추시는 분’(사 45:15, Deus absconditus)이시며단지긍휼과 은혜의 신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무한하신 신’(’el출 34:6[과연 어느 異端者가 구약의 하나님 야훼를 증오의 신심판과 복수의 신이라고 卑下하여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과 대립의 을 세우게 만들었던가? cf. Marcionism!])으로서 부단히 신속하게 지나가기만 하는 우리네 시간의 역사 속에서 전적으로 <>의 체험을 통해서만 <경험/체험>되시는 분이실 뿐이다우리는 단지 빠르게 지나가시는 그분의 등 뒤(하나님의 자기계시)만을 볼 수 있을 뿐그의 얼굴(本體panim: morphe)은 볼 수 없기(출 33:23) 때문이다이것은 야곱(=이스라엘 12지파들)이 깨달은 바대단히 위대한 신학적 각성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창 33:20). 그러므로 구약이 증언하는 신() ‘야훼는 구약종교가 시작하는 그 초기 때부터(아마도 출애굽의 때부터즉 기원전 13세기시내 의 토라啓示 때부터형상화/가시화/우상으로 새겨지는 것그것을 그 무엇보다 가장 강하게 금지하였던 것이라 하겠다따라서 첨단 물리학에서 말하는소위 힉스(Higgs) 입자(粒子)라는 것도 또한 결코 신(자체일 수는 없고단지 신()의 우주창조 활동의 한 도구(道具)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겠다왜냐하면 인간의 눈에 포착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이든 신(, Elusive Presence)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 편집구조에서 볼 때
야곱(이스라엘)의 이러한 <위대한 신학적 각성>(大 覺醒, grand awakening)깊이 생각해 보건대스티븐 호킹이 그의 위대한 설계』 (Stephen Hawking, Grand Design, London: Bantam Press, 2010)에서 깨달은 바그 <위대한 천문물리학적 각성>보다 더 위대한 각성이라고 하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 바로 <세겜땅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고 하겠다.


그 사건의 경위
(창 34:1-35:10)는 대강 이러하였다그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땅 정착기의 아주 초기에 있었던 일로서가나안 땅에 적응하는 과정 중에 일어난 한 에피소드이다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세겜>은 이스라엘이 역사에 등장하기 전에는 이교(異敎)의 지방성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지역이었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야곱이 여기서 제단(祭壇)을 쌓고 <[하늘님]은 이스라엘의 엘로힘[하나님]이다!>라고 하였다는 성서보도는 이스라엘이 이 고대 가나안 제의(祭儀중심지를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려 하였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일종의 이스라엘 신앙의 가나안 토착화 작업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야곱은 여기서 절대 절명의 다음과 같은 체험들을 불가항력적으로 겪게 된다즉 세겜 사람들과의 접촉과정에서 겪은 생의 좌절경험즉 딸 <디나>가 세겜 족(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성폭행)을 당한 그 수치스러웠던 일과 이 사건에 흥분한 야곱의 아들들(디나의 남자형제들)이 아버지(야곱)의 충고도 거절하고 범한 수치스러웠던 그 반()신앙적 집단살해 복수 행위를 막지 못한 그 수치스러웠던 일이로 인하여 야곱은 세겜에서 겪은 그 모든 수치를 정화(淨化)시킬 중대한 결단을 한 후세겜 성읍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깨끗이 내어버리고[淨化하고떠날 것을 온 가속(家屬)에게 명령한 일 그런 다음세겜 대신에 <벧엘>(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지역)을 새로운 거주지로 정하고 거기에 <-벧엘>이라는(벧엘의 하느님이라는 뜻을 가진이름의 새로운 제단을 쌓은 일 등등으로 그의 여정 전부를 끝내었던 것이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분명세겜 땅에서 겪은 그 수치스러운 경험을 정화(淨化)의 결단으로 극복하고 새 거주지와 새 제단을 세웠다는 사실이고 이와 동시에 이러한 야곱의 신앙적 시련극복을 옳게 여기시고 축복하신 야훼 하나님의 그 축복 사(祝福 辭창 35:10-12)가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였다는 그 점이라고 하겠다.


분명
야곱은 딸 디나가 이방인에게 뜻밖의 더럽힘을 받았다는 수치감과 좌절감을마치, “위기는 기회다.”라고 확신한 자처럼그 곳 세겜 땅그 기름진 땅이방인들로부터 대 환영을 받았던 그 땅을 과감히 다 내어 던져버리고마치 특별 세제(洗劑)를 사용하여 조그마한 세균까지도 다 틀어내듯이세겜의 은붙이 금붙이 보물들을 다 틀어내어버리고 그 곳 세겜을 떠났던 것이다그렇게 하였더니즉 모든 세겜의 화려한 금은보화를 다 버리고 황량한 루스 땅그러나구원의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땅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이라는 이름을 그 곳의 지명(地名)으로 지었었던 그 땅[신 현현 장소창 28:19]을 향해 떠나갔더니(벧엘로 올라가자나알레 벧-창 35:3), 전능의 신()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미래를 축복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축복사’(祝福辭)를 선포하셨던 것이다. “너의 이름이 야곱(‘남의 발뒤꿈치를 붙잡다.’ 라는 뜻)이지만 이제부터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씨름을 하다.’ 라는 뜻)이다나는 전능의 신()이다너는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다한 민족과 많은 갈래의 민족이 너에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할라차임 ’, 히브리어 雙數生殖力의 根源으로 여겨진 兩 허리,)로부터 나오리라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에게 주고 그 땅을 내가 너의 자손에게도 주겠다.”(창 35:10-12)


여기서
신학적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네 허리로부터 나오리라!”라는 말씀이다여기서 허리라고 한 말은 히브리어 할라차임”[雙數]이라는 말인데이 말은 바로 얼마 전얍복 나루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싸움]을 하다가 하나님의 공격[심판의 일격]을 받아 부셔진(깨어진바로 그 허리즉 히브리어로는 야레크라고 하는 그 말을 조금 더 분명하게 일반적인 말로 밝힌 동의어(同義語)이다말하자면이 야레크”(構文形으로 연결될 때는 예레크” 즉 예레크-야아콥” 등 참조)라는 말은 관용적(慣用的)으로는 <엉덩이뼈><환도뼈><허리><사타구니(고대 중동에서는 맹세할 때 손을 집어넣는 곳으로서 性器가 있는 부위 즉 生殖力의 자리를 가리킴창 46:26, 요츠에 여레코)> 등으로 번역되어 온 말(창 45:26; 출 1:5 참조)인데남자의 생식기능의 요체(要諦역할을 하는 곳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구약 신학적 문맥에서 보면이스라엘 선조들에게 주신 <후손번성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할 자리>, 그 곳을 가리킨다고 하겠다말하자면하늘의 별들바닷가의 모래들처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그 신의 약속을 성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바로 이 허리인데바로 이 <야곱의 허리>(예레크-야아콥)가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다가 깨어져 부서져버렸던 것이다야곱에게는 최악의 심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허리다 부서져 못쓰게 된 그 허리그 무너진 허리로부터마치 별이 자기폭발과 함께 죽을 때 그 뿜어낸 파편(破片)이 새로운 별(新星), 새로운 은하계초신성(超新星수퍼노바(1987년 2월 23일 밤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아이언 쉘톤이라는 천문학 교수가 발견하였다는 보도와 그 설명 참조)를 만들어내듯이그렇게!!, 야곱의 그 허리(예레크-야아콥), 그 무너진 허리로부터 장차 열왕(列王)이 – 뭇 []생명이! - 태어나리라는 축[]([])를 선포하셨다는 점(창 35:11)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 축
[]사의 중심에는 먼 후일(!) 하나님(하느님)의 아들[神子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그를 따르는 바보 온달들)에게 주신 축복즉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과 그것을 통한 부활/영원한 생명에 관한 축복약속(祝福約束)이 들어 있었던 것이라는 <성서해석>(Biblical Hermeneutics)을 [시도]한다야곱의 깨어진 허리’(=사타구니)로부터 열왕과 뭇 생명이 그리고 메시아들(=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태어나리라는 신의 약속’(의 約束)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패배의 대속적인 죽음으로부터 사망 권세’(죽음의 세력)를 깨뜨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창조해내어 주시겠다는 신의 약속’(의 約束사이에는흔히 성서신학계에서 말하는, <동형이론적인 성서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이 성립된다고 감히 주장한다.


생명’(生命)의 문제(생명의 존재생명의 출생생명의 소진[消盡], 생명의 [창조 등에 관한 문제)는 또한 역시 간단하지 않다그러나 앞 장()에서(직전 칼럼에서길게 논의하였던 <성서에서 본 죽음과 죽음 이후’>에 나타난 나의 주장 및 신앙고백을 전제(前提)한다면 이 문제(생명에 관한 문제)는 반드시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성서신학적인 확신의 대 전제이다그러므로 이 문제는 따로 독립적인 논문으로서 <부록[논문 2]>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여기서는 야곱의 <허리>로부터의 생명탄생즉 야곱의 <사타구니>로부터의 생명탄생에 관한 역설적 증언(逆說的 證言), 즉 야곱의 부셔진 허리로부터 열왕(列王)이 나오리라는 오늘 본문(창 35:11)의 증언은 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부활이 창조된다는 기독교 복음의 분명한 한 예표’(豫表; prefiguration)가 된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으로 이 칼럼을 결론지으려한다누가 감히 구약성서를 기독교의 경전으로부터 퇴출시켜야 한다는 따위의 마르시온적인 이단사설(Marcionite heresy)을 감히 부활시키려 할 것인가?


이러한 
창 35:11의 <깨어진 허리>라는 표상은 족장들의 신앙전통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출애굽 해방역사를 비롯한 이스라엘 구원역사 전체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하여 나타나는 표상이다즉 아브라함 생애의 절정인 모리아山 사건에서 100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쳐야 하는 고뇌의 순간을 극복하는 그 순간이 아브라함에게는 바로 그 <야곱의 허리사건에 유비(類比)될 수 있다면아마도의인(義人요셉이 피를 나눈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이집트 노예 상(奴隸 商)에게 팔려갔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는 이집트 전국의 국고(國庫)를 총괄하는 총리의 자리에 올라 있었을 때그러나그 무엇보다 자신을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넘긴 그 불공지대천의 원수인 형들이 오히려 운명이 뒤바뀌어 굶주림에 못 이겨 양식(糧食)을 구걸하려고 이집트로 내려왔다가 되레마치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총리가 된 그 동생 요셉 앞에 총리의 은잔을 훔친 중범죄인의 신세가 되어 오히려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에 놓였을 바로 그 때에그 다 죽은 목숨을 스올’[死地]로부터(시 130:1) 대 탕감의 용서와 구원(창 45:5; 50:19-20)을 받았던 야곱 전(가문의 그 운명전이(運命轉移)의 순간이 또한 역시 요셉에게는 바로 그 <야곱의 허리사건에 유비(類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족장역사의 운명전이
(運命轉移경험들(아브라함이삭야곱야곱의 12 아들 공동체=이스라엘 12 지파 연맹체가 겪은 運命轉移의 경험들)뿐만 아니라모세가 이끈 긴 출애굽 구원역사에 나타난 운명전이의 경험들(출애굽기여호수아서이집트 탈출홍해와 광야약속의 땅 가나안 입주 역사에 나타난 구원경험들), 사사시대의 무정부적 카오스를 통과하며 이룩해 놓은 초기 이스라엘 왕국들의 기적 같은 운명전이의 경험들그리고 아시리아 제국과 신흥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하여 이스라엘-유다 왕조 역사가 겪은 그 대 몰락(586 BC)으로부터 예상 못한 출()바빌로니아 해방(538 BC)이라는 대()구원을 선물로 받았던 그 운명급전이의 큰 경험(이사야書 1-39, 40-55)도 또한 모두가 <야곱의 허리표상(表象)이라는 문맥 안에서라야 바르게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미 출애굽기 1:5에서는요셉을 통하여 이집트로 내려온 이스라엘 자손들특히 출애굽 공동체를 이끌 출애굽 해방역사의 혁명주체 세력이요 그 공동체의 기본 모체인 그 <70>(창 46:27출 1:5; cf.칠십인 譯本과 사도행전 7:14의 75)을 묘사할 때 이미(!!) 출애굽기 기자는 이집트로 내려옴으로 가나안의 살육적 대 기근으로부터 살아남아 장차 출애굽 해방을 주도하게 될 그 사람들(엘리트들?)을 가리켜서 그들을 <야곱의 허리>(예레크 야아콥)에서 나온 70!!(출 1:5) 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어찌 놀라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있으랴!


심지어는 헬라
-로마 시대의 암흑기를 거쳐 온 후기 유대교의 새 유대 왕국이 드디어는예수의 예언대로(마 24:2; 막 13:2; 눅 21:6), 로마에 의하여 초토화된(70 AD & 135 AD) 이후, 1800여 년 동안 나라 없는 빙점하(氷點下)의 디아스포라 세월을 거쳐서 마침내 유엔(UN)의 승인 하에 <이스라엘>이라는 새 합법국가로 재()탄생(1948년 5)된 그 역사도 또한 <야곱의 허리표상을 통해서만 올바른 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겠다신의 공격을 받아 깨어진 그 <야곱의 허리표상이렇게 하여이스라엘 구원역사와 세계 구원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신학적 중심 축()이 되고 열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창조주 하나님(=야훼 엘로힘)은 ”(ouk-on)로부터 비유”(非有me-on)와 ”(on)를 만들어내시되단지(!), <야곱의 허리>를 쳐 깨뜨리심을 통하여(!), 마치 수퍼노바의 죽음이 그 폭발과 함께 또 다른 새 성운(星雲, another nebula)을 만들어내듯이, (cf. David Mills, Atheist Universe, Berkeley: Ulysses Press, 2006, Pp. 94-95.)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내셨던 것이다실로, <야곱의 허리표상이 가진 이 신비야말로 <왜 우리는 무()가 아니고 유()인가?>라는 우리의 존재에 관한 궁극적인 천문물리학적/철학적/종교적 물음에 대한 성서의 최종 대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