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목본향 찾는 자, 믿음의 어버이 아브라함(어버이주일설교) - 히브리서 11:13-16; 시편 90:1-4; 요한 14:1-3 김이곤 2012-05-162021-10-20 14:52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어버이주일은 본래는 어머니주일이었습니다이 어머니주일은 또한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한 여성운동가인 안나 자비스’(Anna M. Jarvis)라고 하는 분의 노력에 의하여 제정된 날인데최근에는 이 어머니날을 어버이날이라고 불러왔고 교회는 이 어버이날이 지난 후 처음 맞는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켜 왔습니다.


본래
이 어머니날을 제정한 그 취지는 가정과 어머니의 모성(母性)을 기려서가정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개선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왜냐하면 가정의 행복을 가져오는 가장 중심적인 원동력은 어머니라는 존재 안에 내재하고 있다고 믿었고 모성 속성을 가진 야훼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신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고 그런 가정은 가히 하나님의 동산이나 천국,’ 또는 낙원에 비유될 수 있다고 보아 왔기 때문이었습니다말하자면주님을 모신 행복한 가정은 곧 <하나님 나라>를 표상하는 최상의 모델이라는 것이고 이 <천국 모델>의 중심에는 늘 어머니가 계셨으며그래서 어머니의 모성은 우리의 마음의 안식을 느끼는 정신적 고향’, 아니, ‘우리의 본향’ 그 자체라는 것이 성서계시의 주요 가르침이었습니다언젠가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구약의 하나님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바아버지!’라고 불렀던 그 아버지 하나님이신 여호와’ 또는 야훼라는 신의 이름의 그 본뜻은 무엇일까 하고 야훼라는 이름의 원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니까놀랍게도그 야훼라는 이름의 원 뜻은, ‘생명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즉 아담의 아내인 하와’, 이른 바우리의 원조 어머니그 하와라는 말에서 기원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견해는 아직도 견지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야훼를 아버지로서 묘사하는 성서의 표현들을 집중적으로 조사연구해 본 결과그 아버지 야훼의 본질과 속성은단지이름만 아버지이지거의 전적으로그 하나님은 어머니의 모성 속성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매우 놀란 적이 있습니다그리하여 찬송가 555장부터 559장까지의 가정을 주제로 한 5개의 찬송가 가사들도 또한 모두들 이런 모성 속성을 가지신 주님을 주인으로 하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고 그 가정이 우리 모두의 진정한 본향이며 그 본향은 가히 천국에 비유할 수 있다고 노래하고 있음도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저는 문득 우리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을 오늘 본문 중 히브리서 
11장이 <본향 찾는 자!>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 증언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것을 한 번 다시 깊이 상고해 보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히브리서는 이러한 <본향 찾는 자>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강력하게 力說하고 있는 점이 가슴에 크게 와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동시에저도 70이 넘는 평생을 살면서 목사로 부름을 받고 또 목사 양성기관인 신학대학원에서 목사 후보생들에게 성서를 가르쳐 온 40여년의 신학교 교수생활을 깊이 반성하며 오늘 히브리서 본문과 이와 상관된 나머지 두 본문 및 성서 전체의 문맥에서 이 히브리서즉 <본향 찾는 자믿음의 어버이 아브라함>에 관한 증언을 통하여 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즉 이 세상의 삶이란하나의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나그네 같은 이 세상의 고향과는 다른 고향을 찾는 자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삶>이라는 것을 이렇게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는 그런 말입니다말하자면朝聞道하면 夕死可也라는 말이 있듯이즉 아침에 진리를 듣고 깨치면 저녁엔 죽어도 좋다.”라는 말이 있듯이아브라함의 이 <본향 찾는 삶>이야 말로 우리에겐 한 놀라운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런 말입니다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본문과 오늘 설교 제목을이 기쁘고 즐거운 축제의 날인 <어버이주일>의 예배임에도 불구하고이 본문과 이 제목을 오늘 메시지의 본문과 제목으로 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결단코그 무슨 <이 세상은 나쁘고 저 세상만이 좋다>는 따위의소위내세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들께서 이미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만하나님께서는분명이 세상을 만드신 분즉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또 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셨기 때문에그 무슨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이 세상은 죄악스럽고 저 세상은 천당이라는 식으로 이분 화하여 구별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사상이라고 하겠습니다그러므로 여기서 제가 특별히 강조해서 말하려는 것창조주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하는 신앙인들은 이 세상의 그 나그네적인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그러므로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또 이 세상사는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지피조물인 이 세상 그 자체가 그 어떤 절대적 힘을 가지고 스스로를 움직여가는 것이라고 믿거나이 세상이 영원불변하고 이 세상이 곧 신()이요 창조자인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그리고 또 이러한 늙고병들고죽고하는 것그것은 결코 절대가 아니라는 것그러므로이 시간이라는이 세월이라는 리듬을 절대화하여그것 때문에 근심하고걱정하고괴로워하고하는 그것은 믿음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드리는 말씀이며바로 이 증언이 오늘 설교의 중심 의도라는 의미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본적지 고향인 메소포타미아의 
<우르>라는 땅에서 막내 동생 하란과 사별하자 <하란>이라는 곳으로 옮겨 왔지만이 곳 <하란>에서는 아버지마저 사별하게 됩니다그러나 이 기분 나쁜 객지 땅이지만이곳 <하란>에서 뜻밖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召命)을 받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모두 다 버리고 떠나 가거라그리고 내가 네게 장차 보여 줄’ 그 약속의 땅으로 가거라그러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후손 번성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 약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아이 낳지 못하는 불행한 불임여성(不妊女性)인 아내 사라와 그리고 천애의 고아인 조카 롯만을 달랑 데리고 <신이 약속하신 땅이름도위치도 모르는 그 미지의 땅>을 찾아 그 곳을 그리워하며 떠나갔던 것입니다그런데이러한 아브라함의 행위를 가리켜 오늘 본문 히브리서는 믿음의 행위라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본래는 고향이 없는 자는 아니었습니다세상형식으로 말하면그가 떠나왔던 그 우르라는 곳은 분명그의 고향이었습니다그러므로 떠나 온 그곳을 만일 그가 정말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는 바로 그 참 본향’>이라고 생각하였더라면돌아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 본문도 말한바 있습니다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은 <본향을 찾는’! 길손일 뿐이요 나그네였을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바로 여기에 오늘 메시지가 말하려는 바로 그 주요 강조점이 있습니다즉 그가 떠나온 그 우르가 그가 찾는 진정한 고향그의 실제 본향은 아니라는그런 말이었습니다즉 그가 찾는 본향은 따로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세상의 믿음 없는 자들과는 다르게 그는 다른 고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어버이 아브라함이 사람은 믿음에 따라 살다가 믿음에 따라 죽은 사람이었습니다비록 그는 살아생전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다 받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곳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으며이 땅에서는 자신은 단지 길손일 뿐이요 나그네일 뿐이며 ()일 뿐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살았던 자였습니다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은본래자기가 다른 고향참 본향을 찾고 있는 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라고 우리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로 여기에 오늘 설교가 말하려는 요지가 있습니다오늘 읽은 성서본문이 말하려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즉 창세기 3장의 인류타락 기록에 대한 역사과학적인 연구이른 바성서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를 찾는 본격적인 성서공부를 통하여서 볼 때와 그리고 그러한 본격적인 성서공부가 아니더라도 주의 깊게 앞뒤 문맥을 잘 살펴서 읽기만 하여도 그런 결과와 일치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본문인이른 바오늘 설교본문 세 곳 중 하나인 시편 90편 1-4절이 아주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듯이우리 모든 인간이 모두가 다 꼭 같이 겪는 인간의 그 죽음이라는 것은 결단코 절대적인 세력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며그러므로그 죽음은 우리가 떠나왔든 그 본래의 고향인 그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서부터 잠시 이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왔다가(창 4:1) 우리 생명의 진정한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즉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거라!” 또는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거라!”라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그 명령에 따라(창 3:19; 시 90:3) 우리가 본래 떠나왔던 그 우리의 진정한 본 고향인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just! <돌아가는 것> 그것일 이라는 것입니다즉 한국말에도 죽는다.’라는 말을 돌아갔다.’라고도 말하는 관습이 있습니다만, ‘죽음은 결단코 <절대적 세력>! 이른 바모든 것을 끝장내고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는 그런 것이 아니라결코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말하자면, ‘저승이니 지옥이니 하는 그런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단지! ‘흙에서 와서 흙에로 돌아가는 것’ 즉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원 고향에서 잠시한 백년 나왔다가 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이른 바그 영원한 순례의 길 중앙에 있는 하나의 <중간점>(mid-point)에 불과한<상대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그런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동지인 우리 교우들도 한 분두 분우리 곁을 떠나가는 아픔을 우리는 경험합니다그러나 실제로는그들이 그 무슨 <사망(死亡)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실제로는그들이 이 세상으로 보냄 받아 나왔던 그 출발지그들의 그 본향즉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그 아버지의 거처(居處)즉 그들의 본향으로히브리어로는 아도나이 마온이라고 표현한그 주님의 거주지로욥기 38:8의 표현에 의하면, ‘메레헴’ 즉 그분의 자궁으로부터’! 나와서 다시 그분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었습니다좀 더 구체적으로는 어머니 하나님의 모태로부터 나와서 어머니 하나님의 모태로 돌아가는 것그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서 해석학적으로 볼 때
, ‘죽음은 결코 그 무슨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그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단지 하나님 아버지 그분이 만드신 그분의 세계로 내어보냄을 받아 잠시 떠나왔다가 주어진 일생을 다 산 후그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그 창조주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는 그런 말입니다단지 귀향’(歸鄕)하는 것일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확실하게 고백하고 믿으시는 분은그러므로,! 성서의 이 증언을 믿지 않으려고 할레야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마치 이 우리가 ’()가 아니고 ’()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듯이우리는즉 존재하는 우리는()가 아니고 유()인 우리는이 증언을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성서본문인 히브리서 11:13-16은 그 결론부에서 이렇게 결론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자신을 가리켜서 그를 지으신또 그를 잉태하고 낳으신 <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즉 <아브라함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오히려그를 위하여 한 도성을 따로 마련해 두셨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 <김 아무개 하나님!> <이 아무개 하나님!> <박 아무개 하나님>이라는 말은 성서 신학적으로는 바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분명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켜 온 말인 것은 분명합니다특히 저 유명한 사도 바울의 말씀인로마서 5:12의 말씀즉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는 말씀, -분명히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다시 해석되고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연구해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할 말씀이지만,-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그러므로 인간이란문자적으로 그렇게그 무슨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의미의 말이 아니라!좀 놀라시겠지만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그 근본적 의미를 면밀히 살펴보면인간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죽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죄 때문에 인간이 비로소 죽는 존재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즉 인간이 본래는 불멸의 존재(神 또는 )였는데 죄 때문에 비로소 사멸하는 존재가 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본래는 유한하지 않았던 존재가 죄 때문에 유한한 죽는 존재가 되었다는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창세기 3:19의 번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그리고 바울의 로마서 5:12의 말씀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 때문에 생겨난 것일 뿐입니다특히 로마서 5:12-21의 말씀은비록 해석상의 난해 점(難解 点)을 갖고 있기는 하나이 말씀은 어디까지나 사도 바울이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救援케 하는 =代贖의 )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 사이를 동형론적 유비(typological analogy) 관계로 설명한 것으로서 <‘욕심이 잉태하면 를 낳고 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 1:15)라고 한 말씀처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죽음에 이른다.>는 경고(창 2:17)처럼죄악의 세력이 가진 그 전염성(傳染性)을 일깨우는 말씀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므로 죽음을 원죄론(原罪論)과 연결시키는 것은 분명 해석학적 오류라고 하겠습니다그러므로 ’ 또는 죽음의 세력을 절대화하는 것은 해석학적 중대오류이며 신()의 절대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겠습니다인간이 죽는다는 것의 그 진정한 의미는 오히려 이것입니다즉 하나님께서 태초에 즉 창조 직후에 우리 인간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너는 본래 흙이었으니 그러므로 너는 흙으로 돌아가거라!” “너희 인생들아모두들 때가 차면 돌아가거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신 그 인간인 우리는즉 신()이 아닌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그 명령에 따라그 명령 때문에흙으로먼지로한 줌의 재로 돌아갈 뿐이라는 그런 말씀입니다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은 죄의 절대적 세력 때문에 또는 죄의 유전성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은 유한한 흙이고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향하여 태초의 창조 때창조주 하나님께서 <흙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 모든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동시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대속적 사랑)이 지닌 은총 때문에 우리 흙의 본질인 몸도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 다시 사는 것(몸의 부활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사도신경의 끝 부분,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본래부터 불멸불사(不滅不死)의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마침내는그 왔던 곳으로 돌아갈 으로창조되었고 그러므로 그 본질은 입니다좀 더 정확히 말하면즉 히브리어 원문대로 말하면, ‘앗팔 민 하아다마’ 즉 땅(‘아다마’)에서부터 긁어모은 먼지’(‘앗팔’)가 인간의 본질이고따라서 우리네의 이 이 아담이라고 하는 한 인간 인격이 된 것(becoming)은 창조주 야훼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운’(‘생기’)을 생명 없는 그 ’ 속에 불어 넣어주시니까그 때야 비로소그 흙덩이가 살아있는 생명체인 인간존재가 된 것(to become)일 뿐이라는 것입니다.(창 2:7그러므로 절대는 하나님 이시고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은 모두가 다 만들어진 것피조된 것즉 상대적인 이라는 말입니다하나님이 살리시기도 하고 죽이시기도 하실 뿐이라는 말입니다.(신 32:39; 삼상 2:6 참조신명기 32:39를 보면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었습니다오직 나만이 하나님이다나 밖에는 다른 신은 없다나는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한다나는 상하게도 하고 낫게도 한다아무도 내가 하는 일을 막지 못한다.라고 성서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대언(代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그분만이! 태초에 계셨고 그리고 그분만이 절대이시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 중 마지막 본문인 요한복음 14:1?3에서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도 직접, 친히 자신의 입으로(ipssisima verba!) 친히 자신의 입으로! 이렇게 유언을 남기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내 어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居處)를 예비하러 가노니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있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자신을 이 세상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귀향하신 것입니다이 모든 일을 이렇게 섭리하신 분은 오직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그분 만이십니다그러므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결단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야할 것이며 그리고 그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그 궁극의 고향이 믿음이 없는 자의 고향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죽음, ‘늙고병들고마침내는 죽는 것,/ 그것은 우리가 괴로워할 절대적 권세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우리 믿는 자들은우리 아브라함의 후예들은주님께서 마련해 두신 다른 고향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이 믿음이 있는 자는사도 바울처럼우리도 또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모든 것을넉넉히 이기느니라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만일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If God is for us, who is against us? 자기 아들을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시지 아니하겠느뇨그러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