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목 ‘롯’이 ‘소알’로 가다: ‘몸의 부활’이냐? ‘영혼불멸’이냐?-창18:1-19:29 (2); 창 19:29절에 대한 신학적 명상 김이곤 2012-05-292021-10-20 14:52

이 소알로 가다: ‘몸의 부활이냐? ‘영혼불멸이냐?

18:1-19:29 (2); 창 19:29절에 대한 신학적 명상 -

참조창 2:7; 3:19; 시 90:1-3; 전 3:18?22[특히 21];4:1-3

 

 

거대한 문화도시인 소돔성은창 18-19장을 기록한 성서기자의 해석에 의하면, ‘의인’ 열 사람이(창조적 소수가없다는 그 이유 하나(창 18:32) 때문에 깡그리 잿더미가 되어 마침내는 소금 기둥이 굽어보는 염해(鹽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이러한 엄청난 심판 사건에서부터 살아남게 되는 저 은 두 딸의 희생까지 감내하면서라도(창 19:8) 저 불쌍한 나그네를 극진히 접대하였었던 그의 그 의(비교마 25:35,38,43-44) 때문에(성육[成肉]한 하늘사자히 3:2 참조소돔으로부터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거기서 나와서곧장저 아주 작은 성”(창 19:20) 소알을 피신처로 정하고 그리로 가서 거기 안착하게 되었다는 것이 소돔 성 멸망보도의 중심내용입니다멸망과 (멸망)이 극명하게 대조(對照)된 사건보도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보도의 결론 절
(창 19:29)을 기초로 하여 몸의 부활이냐? ‘영혼불멸이냐 라는 이슈를 문제 삼고자 합니다그래서 구약성서가 이 문제(몸의 죽음과 구원)에 관해서 가장 확실하게 계몽해주는 곳인 다음 두 범주의 본문에 의해서 접근한 다음우리의 본문에로 돌아가 보기로 하겠습니다그 두 범주는 그 성격상 (1)창 2:7; 3:19; 시 90:1-3과 (2)전도서 3:19-22[특히 3:21]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의 경우는저 유명한 구약의 대표적이고도 고전적인 인간학에 관한 본문들인데그들 모두가 동일한 내용을 갖고 있는 동일 성격의 본문들로서<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본래 ’, 더 정확히는 ’(‘아다마’)의 먼지’(‘앗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주 분명한 언어로 말해줍니다그리고 그 이외의 구약본문들 모두(!)도 이 내용과 결코 충돌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이 점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진술은 저의 <칼럼2> 구약성서의 인간이해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그러므로 여기서는 <칼럼 2>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전제하겠습니다즉 인간의 본질은 이며 그 흙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음으로서 비로소 인간은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었으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2:7에 나오는 이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말은 개역 성서 및 개역 개정판 성서가 생령’(生靈)이라고 번역은 하였으나 이 말에 대한 개역개정판의 각주(脚註)는 생물’(生物; ‘네페쉬’)이라는 난 아래의 주()를 달아서 보충설명을 하였고그리고 창 1:21,24 본문에서도 이 히브리어 네페쉬라는 말을 모두! 생물이라고만 번역하고 있는데이 말의 히브리어 원어(네페쉬’)의 그 원(뜻은 그러므로 생명체라는 뜻이지결단코소크라테스의 교설이 가르치는 바와 그리고 초대교회의 최대 이단(異端)인 영지주의’(gnosticism)가 말하는 바와 같은 그런 그 불멸의 영혼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이 생명체(生命體)라는 말은구약에서는비록 가끔은 시편 시에서 흔히 시적(詩的)으로 가끔 영혼이라고 번역해오기는 하였으나그 말은 단지 생명’ 또는 생명체라는 뜻이지 결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저 불멸의 영혼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기독교 초기의 이단인 영지주의가 바로 이러한 헬라사상에 대한 지식을 신비한 영지’(靈智, gnosis)인양 강조하며 초대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몸의 부활에 대한 복음신앙을 믿지 못하도록 위협해왔기 때문에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변증(辨證)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지만결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습니다(행 17:32-34).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경우를 우선 집중적으로 검토하려 합니다.


(2)
의 경우즉 위 (1)에서 언급한 히브리 신앙(구약 신앙)의 기본 핵심을 전제로 하고 구약 최 후대의 글들(지혜서들잠언욥기그리고 전도서)을 보면이와 관련된 결정적인 또 하나의 언급이 전도서 3:16-22; 4:1-3에 나타나 있음을 봅니다특히 전 3:18-21이 그 결정적인 자료입니다얼마나 반가운 자료인지!!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이슈
(몸의 부활이냐영혼불멸이냐?)와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은 역시 전도서 3:18-21을 어떻게 주석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하겠습니다왜냐하면우리의 주제를 푸는 데 있어서 가장 난해한 문제는 ’ ‘’ ‘영혼라는 거의 입증 불가능에 가까운 언어들그 중에서도 특히 영혼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를 푸는 것이 우리에게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이 일을 하기 위하여서는전도서 3:18-21을 바르게 번역 해석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전도서 3:18-21 본문(개역 개정판)

 

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전도서 3:18-21 본문(새 번역)

 

18. 나는 또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은사람이 짐승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을 시험하신다. 19. 사람에게 닥치는 운명이나 짐승에게 닥치는 운명이 같다같은 운명이 둘 다를 기다리고 있다하나가 죽듯이 다른 하나도 죽는다둘 다 숨을 쉬지 않고는 못 사니사람이라고 해서 짐승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모든 것이 헛되다. 20. 둘 다 같은 곳으로 간다모두 흙에서 나와서흙으로 돌아간다. 21.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아래 땅으로 내려간다고 하지만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22. 그리하여 나는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것은 곧 그가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사람이 죽은 다음에그에게 일어날 일들을 누가 데리고 다니며 보여 주겠는가?

 

위의 두 번역 본문을주의 깊게자세하게 반복해서 읽어보면그 내용은 <사람과 짐승이 둘 다 똑같이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창 2:7과 창 1:21,24, 두 곳에서 말하는 생령이라는 히브리어는 모두 똑 같이 네페쉬인데그 동일한 말을 전자는 생령으로 번역하고 후자는 생물이라고 번역하였음.) 둘 다즉 사람이나 짐승이나 둘 다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짐승도 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이 점은분명인간은 영[]을 갖고 있으나 짐승은 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우리 인간들의 잘못된 선입견을 날카롭게 그리고 매우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21절의 말씀도 당연히 <새 번역판>이 <개역 개정판>보다 그 의미를 더 정확이 하였다는 것이 분명합니다그리고 <누가 알랴?>와 <누가 알겠는가?>라는 말도 단순한 의문형이 아니라 강력한 부정(a strong negation)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G. A. Barton의 ICC 전도서 주석은 매우 분명하게 이 사실을 설명해줍니다.) 그렇습니다새 번역이 말하듯,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아래 땅으로 내려간다고[하지만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라는 말은 성서 밖항간에서다들그렇게들 잘못 믿고 있지만 사실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믿을 수 없는(결코 믿어서는 안 되는) 가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위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사람이란 죽을 몸과 죽지 않는 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몸은 죽어도 영[]은 불멸(不滅불사(不死)하여 영원히 산다고 하는 그런 그리스(헬라)의 이단교설에 속거나 미혹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우리의 삶과 죽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관장하실 뿐이며 결코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신 32:39; 삼상 2:6)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맥 안에서 볼 때
, ‘소돔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 죽고 은 구원 받아 살았다는 우리 창세기 본문의 증언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이제는 분명하게 되었다 하겠습니다즉 이 성서문맥은 몸이 죽고 다시 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불멸의 영[]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가설이 어떻게 하나의 이단교설에 불과한지가 이젠 매우 분명하게 되었다 하겠습니다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그분의(His/Her own) 세계 안에 그 무슨 이승과 저승이 나누어져 있고 또 그 무슨인간은 짐승과는 달리 피조물 중에서는 유일한 영의 소유자라든지 하는 것은 결코결단코 사실이 아니며 그러한 영혼불멸’ 가설은 성서(구약과 신약)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단교설로서우리의 복음즉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이시고 그분만이 생사화복의 주인(신 32:39; 삼상 2:6)이시며 우리 인간은 결코 그분에게서부터 도피할 수 없는(시 139존재로서 단지 그분의 것’(시 100:3)에 불과하다는 것그러므로우리의 희망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오직 이 모든 만유를 지으신 전능자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그 선하신 뜻(‘긍휼의 본질안에만 있다는 진리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이것만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들에 있는 성들을 멸하실 때에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그래서 하나님은롯이 살던 그 성들을 재앙으로 뒤덮으실 때에, [그분께서] 롯을 건져 주신 것이다.” 창 19:29) *세 문장 모두의 주어는 하나님만이라는 사실을 주목해 보십시오.

 

소돔 성 멸망과 롯의 구원에 관한 우리 본문(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증언(복음 선포)은 바로 이것입니다우리의 희망은 하나님 안에만 있고 피조물인 우리 안에 있지는 않습니다옳습니다그러므로 교회는 이러한 복음을 다시금다시금 선포(re-telling)하는 하나님 선교’(Missio Dei=Mission of God)의 전진기지즉 하나님 선교의 아방가르드이지 결코결단코 인간종교의 마켓이 아닙니다이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나는 길이요진리요생명이다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요한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