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목인간구원은 야훼께서만 하시는 일이니! - 시편 3편 김이곤 2014-03-222021-10-20 14:59

인간구원은 야훼께서만 하시는 일이니!

시편 3

 

다윗의 시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하였을 때 지은 시.

 

1[2]* 야훼여!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나를 치려고 일어나는 자들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2[3] 많은 사람들이 내 목숨을 노려보며 빈정거리기를,

너의 하나님조차 너를 돕지 않는구나!”** 라고 말합니다. [셀라]***

 

3[4] “그러나 당신은! 야훼이시니나를 사면으로 둘러싼 방패이시고,

나의 영광이시며 나의 머리를 높이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라는

4[5] ‘나의 소리’(q?l?; my voice)가 야훼께 이를 때에는,

그분께서는 자신의 성산(聖山)에서 내게 응답해 주십니다. [셀라]

 

5[6] 나 비록 곤하게 누워 잠들었다하여도

나는 곧 깨어나나니 이는 야훼께서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6[7] 그러므로 나를 대적하여 사방으로 에워싸 진()을 친

천만의 군대라고 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7[8] 일어나소서야훼여나를 구원하소서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내 모든 원수들의 뺨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빨을 부러뜨리셨습니다.

8[9] 구원은 야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니 주의 복은 주의 백성에게만 내리시리이다.

 

* [ ] 안의 절수는 히브리 본문(MT)의 절수를 가리킴이하 시편의 [ ] 안의 절수는 히브리 본문의 절수 표시임.

** 이 궁서체의 인용 언어는 마소라 본문 대신 시리아 역본을 따른 것이다시리아 역본의 번역은  하나님에게도 너를 구원할 의사가 없구나!라고 되어 있다.

*** ‘셀라라는 말은 음악적 지시를 나타내는 말이다그러나 그 지시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그러나 위 본문 중의 고딕체 문구(7[8]절 상반의 외침)는 시 전체의 3+3리듬을 깨고 갑자기 나타나는 2+2 박자의 짧은 함성(喊聲: 일어나소서!/야훼여!//나를 구원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라는 짧은 [戰爭]喊聲?)이므로 이것이 바로 그 음악적 지시(‘셀라’)의 내용’, 즉 <셀라>가 있는 곳에서 온 회중이 유니송 함성을 외쳤던 내용이 아닌 가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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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전반적 분위기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대적(對敵)에게 둘러싸인 사람의 구원호소로 구성된 아침기도(5[6]b)였음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고 또 그러한 <고난으로 인한 부르짖음해방(구원)>의 분위기 전환의 확신을 묘사하기 위하여 구사(驅使)되는 표현들은거의가 대체로군사적 용어(전쟁용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시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구성구조는 매우 단조롭고 또 그 구성단락들이 확연하게 구획지어진다는 특징도 드러난다즉 그 구성구조는 <신명(神名)을 외쳐 부름(1a→ 탄식(1a,b-2[1신뢰표현으로의 급전환(3-4→ 기원(祈願; 7a→ 확신표현(7b→ 확신 결구(結句; 8)>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명(神名부름 구()들은 시편의 탄식기도들에서 매우 흔하게 그러나 매우 특징적으로 나타나듯이그 구성은 매우 단순간명하게, “야훼여!” 또는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되어 있어서이러한 단순함과 단조함은이와는 확연히 대조적인 고대 중동지역의 기도문들이른 바, <신명(神名부름 구()>를 매우 장황스럽고 길게 늘어질 정도로 긴 수사’(修辭, long invocation)들로 꾸미는 고대 바벨론의 탄식기도문들의 서두문’[導入句]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것은 이스라엘 시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해주는데이러한 이스라엘 신앙의 그 고유성과 특이성은 예수님께서도 이미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법(통칭하여 주기도라고 부른다마 6:9b-13, cf. 눅 11:2b-4)을 가르치실 때매우 확실한 언어로(마 6:5-8) 이교(異敎기도의 그 위선’(마 6:5)과 중언부언’(마 6:7)을 경계하며 가르치신 바가 있다그러므로 모범적 기도는 그 기도의 대상을 요란스레 수식하여 신의 마음을 이끌어내려는 허례허식의 기도가 되어서는 안되고 그러한 허례(虛禮)는 반드시 극복지양(克復止揚)되어야 한다고 하겠다.

[* 이 분야에 관한 고전적 연구는 
H. Gunkel의 충실한 제자, Joachim Begrich가 1928년에 쓴 그의 논문, “Die Vertrauensausserungen im Israelitischen Klagelied des Einzelnen und in seinem Babylonischen Gegenstuck” Gesammelte Studien zum Alten Testament, Munchen: Chr. Kaiser Verlag, 1964, Pp.168-216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의 본문 시편 3편은 모범적 기도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기도의 시 (Gunkel이 말하는 개인 탄원 시 또는 개인의 기도 시)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매우 짧은 도입 구(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하는 呼訴 句다음으로 곧 이어지는 구문(句文)은 대체로 절박한 탄식 또는 기원으로 표현된다.(과 이라는 두 요소가 이 시양식의 중심적 구성요소이므로이러한 시 양식을 나는 탄원시’ [歎願詩+]라고 명명[命名]한다.) 


시 
3편의 경우수식 없이 신의 이름을 절박하게 부르는 짧은 호소 그 다음에는 탄식’(歎息)이 토로된다이 탄식의 주 내용은 나를 치는 대적들이 너무 많다.”는 점을 탄식하는 것이다즉 많다!”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표현되므로원수는 많고 자신은 소수’(=홀로)라는 수적 대비(數的 對比)가 강조된다이러한 강조어법은분명구약에서는 주로 거룩한 전쟁’[聖戰]에 관한 설화에서 마치 조문처럼 자주 반복되는 어법이다마치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수즉 칼과 창과 방패 및 갑옷으로 무장하고 또한 역시 중무장한 부하 마병들을 대동한 그런 블레셋의 거인 장수 앞에 홀로 막대기 하나만을 들고 서 있는 예쁘장한 홍안소년즉 갑옷도 너무 커서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이 어린 홍안소년 다윗(삼하 17:42)의 그 대조적(對照的모습을 연상하게 한다(삼상 17:41-44). 그러나 놀랍게도다음과 같은 소년 다윗의 외침’ 내용은분명히 놀랍게도거룩한 전쟁 전승의 중심신앙과 기본이념을 매우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즉 너는 을 차고 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아 왔으나그러나 나는([]아노키), 네가 깔보고 모욕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만(beshēm)!!을 의지(依支)하고 너를 향해 나아간다.”(삼상 17:45)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탄식의 분위기를 -전도(-顚倒시키고 있는 3[4]절 서두의 수사어투그러나 당신은([]앗타) !” 라는 어투의 와우[봐브반어법’(waw-adversative)은 히브리 개인 탄원시의 경우그 기능이 매우 고유하고 특이하다고 하겠다즉 이 반어법은 앞에 나타난 <탄식>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反轉: mood change)시켜서 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 근거한 두려움 없는 안전감>에 이르도록 만든다이 분위기 반전(反轉)을 일으킨 그 절대 안전감의 표현은 3[4]의 그러나 당신은 야훼!”라는 어투로 시작하여 점층적(漸層的, climactic) 발전을 이루며 6[7]에까지 계속되어 마침내! <셀라>가 와야 할 자리에서 <셀라>를 대신하여 나타난 (아마 셀라의 지시 내용이었을 것으로추측되는) 2+2 박자 반복의 짧은 호소 구(쿠마// 호쉬에니엘로하이”(2+2) 즉 일어나소서!/ 웨여!// 날 구하소서!/ 내 하나님이여!”2+2)라는 후렴 형식의 외침(outcry)형 짧은 기원 구(祈願 句, petition)에게로까지 이어진다이러한 구조(<신의 이름의 짧게 외침+탄식(점층적 확대)+구원 요구의 함성[outcry]구원확신의 구조)분명구약성서의 구원사적 진술의 원형(Urform) 및 기본골격(basic framework)이라고까지 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 이 기본골격이 구약 구원사 진술들 속에 매우 널리 나타난다는 것을 밝힌 필자의 논문, “ ‘Outcry’: Its context in Biblical Theology” Interpretation, 42/3, July 1988, Pp. 229-239를 참조하라]


그리하여 이 시의 결론구
(結論句)는 매우 확고한 신학적 확신으로 매듭지어진다즉 구원은 야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라는 신학적 결론을 내림으로서()3편 시인은 그의 시()를 마무리한다. 구원은 야훼 신()의 것이다.” 이 조문형(條文形선언은 인간구원의 사역(使役)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의 비즈니스라는 것이다물론 인간구원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역할분담을 하실 수 있는 것이지만 인간구원은 본질상 인간 스스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말이다일종의 터부(taboo), 히브리어로는 헤렘’(ḥērem; חרם)이라는 것이다즉 이 말은 신의 전리품’ 이른 바 ()의 것’‘신의 소유이므로 한 편으로는 인간이 적극적으로 본받아야 하지만(마 5:48) 동시에 이와는 정 반대로 하나님의 것이므로 인간이 손을 대서는 안되는 것(anathema; 수 6:17: 7:12; 왕상 20:42), 말하자면인간이 손을 대면 <‘부정’(不淨타는 것>(신 7:26)이기도 하였다.
 

히브리어 헤렘(ḥērem; חרם)이라는 말이 가지는 이러한 이중적 의미그것이 이중적이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고는 하지만여기 시3편 시인이 말하는 바, ‘인간 구원이란 ()의 것이므로 인간이 손을 대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말할 때의 그 의미란 인간구원 사역(使役)엔 신·(·협력과 같은 것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이른 바, ‘시너지즘’(synergism) 사상과 같은 것은 거부한다는 그런 의미보다는 <인간구원의 절대적 주권이란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는 신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고 동시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인간의 유한성을 철저히 강조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즉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인간구원은 전적으로 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인간구원에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라도나이 하여수아!” 직역하면 그 어순(語順)이 야훼의 것이다그 구원이라는 것은!”이 된다.
 

야훼의 것이다!”(“라도나이”)라는 말이 어순상(語順上의도적으로 <강조>를 하기 위하여 이 시 결론구의 맨 앞에 온 것은 분명 고난 중의 시인이 오랜 신학적 명상 후에 내린 최종 결산이라고 하겠다절실한 인간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과 불가항력적으로 깨닫게 된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에 대한 대각성(大覺醒)이라고 하겠다인간구원은 인간 스스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이다인간 구원은 전혀 신의 은총에 속한 것이라는 것이다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신의 은총에 대한 절대 의지(依支)의 신뢰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