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목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 - 창 45:4-8 김이곤 2012-12-162021-10-20 14:56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

창 45:4-8

 

나는 당신들이 애급으로 팔아넘긴 동생 요셉입니다그러나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실제로는! 당신(형님)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형들에 의하여 애급 노예로 팔려갔었던 동생 요셉이 그를 애급에 노예로 팔아 넘겼었던 그 비정(非情)한 형들 앞에서 외친 말이다.


요셉은
― 그 옛날참으로 참혹하리만큼 외롭게형들에 의하여 종으로 팔려 이방나라인 애급 땅으로 내어 쫓김을 당하였었다그 애급 종살이 시간은 요셉에게는정말!,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그럼에도 그는 그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참담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모든 시련(試鍊)과 역경(逆境)을 기적적으로 다 잘 이겨내고지금은일약이 큰 대국(大國), 이른 바당시 중동세계의 대표적 초강대국인 애급 대제국의 국무총리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이렇게 함으로 그는실로, “운명극복의 기적을 일구어낸 매우 보기 드문 행운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기세 등등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같은 피를 나눈 친동생조차 조금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않고 단돈 은 스무 냥에 잔인하게 노예로 팔아먹었었던 그 형들은지금은 오히려 매우 영락(零落)하게 되어춥고 배고픈 유랑민의 신분으로끼니조차 이을 양식이 없어서 멀고도 먼 그 사막 길을 도보로 걸어서 여기 애급 땅에까지 양식을 사러 온 낮고 천한 난민의 처지가 되어있었다설상가상으로 그들은매우 운 나쁘게총리의 은잔을 훔쳤다는 누명(陋名)과 또 남의 나라의 기밀(機密)을 정탐(偵探)하러 온 간첩이라는 혐의까지 받고체포된 몸이 되어총리 앞에 끌려 온 신세가 되어 있었다말하자면총리의 말 한 마디만이면 순식간에 목숨이 달아날 경각의 운명에 처해 있었다그리하여 이 형들은 그 옛날 동생에게 행한 그 씻을 수 없는 죄 때문에지금은 지존의 총리각하가 되어 있는 동생으로부터 추상같은 복수의 칼을 받게 될지도 몰라거의 죽을상이 되어 있었다그야말로문자 그대로피비린내가 요동칠 살벌한 국문 장의 분위기였다.


숨을 죽이듯 긴장의 정적
(靜寂)이 감도는 이런 상황에서는일반적으로 사람들은통쾌한 복수드라마의 연출을 예상하게 된다그러나 놀랍게도요셉은 여기서 우리 같은 범인들로서는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말을확신을 가지고형들을 향해 말하였다.

 

형님들형님들이 나를 애급에 종으로 팔아넘긴 것은 사실입니다만그러나그렇다고 하여 그 일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사실저를 이곳으로 보낸 자는 형님들이 아니라! [실제로는!] 하나님이셨습니다하나님께서우리들의 생명을 저 극심한 기근에서 살려내시려고 오래 전부터 계획하셔서 저로 하여금 우리 가문을 살리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저를 형님들보다 앞서“ 이곳으로 보내신 것일 뿐입니다그러므로 저를 이곳에 노예로 팔려오게 하신 분은, [실제로는,] 형님들이 아니라하나님이셨습니다.”라고 하였다놀랍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놀라움은 요셉의 저 바다같이 넓은 관용의 행위에 대해서 느끼는 놀라움은 결코 아니다진정한 놀라움은 오히려 이것이었다그것은 같은 피를 나눈 친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긴 저 반 인륜의 악한 행위가 결단코 형들 때문에 생겨난 인과(因果)의 결과가 아니라!, 실제로는단지 선하신 하나님’ 자신께서 깊은 뜻이 계셔서 친히 계획하셔서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네의 일반적인 신앙세계에서는 전혀 이해하기가 힘든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경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왜냐하면 일반적인 신앙세계에 의하면, <은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어둠은 악()한 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는 그런 것>인데그러나요셉의 이 신앙고백에 의하면이와는 전혀 달리!형들이 저지른 저 악랄한 반인륜의 악행과 그로인하여 동생 요셉이 겪었었던 저 참혹하리만큼 고통스러웠던 그 불행스런 삶이 결코 그 어떤 악마의 짓이 아니고! 오히려그 선()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며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셔서 이루신 일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의 이 신앙고백 속에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그런 일반적인 고정관념 속에 붙박여 있는 그런 통속적인 신앙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다음과 같은 심오하고도 차원 높은 신앙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신앙은 바로 이런 신앙이었다
즉 그것은 이 우주 역사의 모든 사건이란 오직 한 분으로부터만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를테면이 온 우주를 만드시고 통치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것말하자면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신은 둘이거나 셋이거나 또는 그 이상의 여럿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만이라고 믿는 신앙이른 바유일신 신앙(唯一神 信仰, implicit/practical monotheism), 그것이었던 것이다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한다면이 모든 세상사들은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릴 것 없이그 모든 것들은 전적으로 오직 한 분!! 창조주 하나님 그분 한 분의 뜻에 의하여서! 일어나는 것이지 결단코 그것이 그 무슨 ()한 신()과 악()한 신()이 따로 따로 있어서 그 두 신()에 의하여즉 좋은 것은 선한 신에 의하여 일어나고 나쁜 것은 악한 신에 의하여 일어나는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幸福은 한 으로부터 오고 不幸은 한 으로부터 온다.

富饒는 한 으로부터 오고 貧困은 한 으로부터 온다.

健康은 한 으로부터 오고 疾病은 한 으로부터 온다.

平和는 한 으로부터 오고 戰爭은 한 으로부터 온다.

밝음은 한 으로부터 오고 어둠은 한 으로부터 온다.

 

라는 따위의 그런 이원구조는 결코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본문은
같은 혈육의 동생을 애급에 노예로 팔아넘기는 그런 반인륜의 악행과 불행이라 할지라도성서의 唯一神信仰의 눈으로 다시 보면즉 성서적 신앙의 눈(eyes of faith)으로 새롭게 다시 보면실제로는!!, 형들이 저지른 악행도 아니고 악마의 장난도 아닌전적으로 그것은 역사의 유일한 주인이신 한 분 뿐이신 하나님 한 분의 신비한 역사 섭리와 역사 경륜에 속한 일일 뿐이라는 그런 말씀이었다즉 선도 악도밝음도 어둠도평안도 환난도생명도 사망도 실상은 모두가 다하나님 한 분그 분께서 홀로주도하시는 일일 뿐이라는 그것이었다말하자면 의인 욥이 깨달았던 것처럼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지만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욥 1:21)이시라는 것이다또한 신명기 신학자도 각성하였던 것처럼 살리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만 죽이시는 이도 하나님” “낫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만 병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신 32: 39; 삼상 2:6-7)이시라는 것이다. 흥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만 망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말하자면인간 생사의 모든 여탈권이 전적으로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다는 그런 말씀이다창조주 하나님은 이 세상사를 결단코 마귀나 악마나 사탄과 역할분담을 하여 일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이다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홀로하신다는 것이다이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서의 증언은
그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어려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왜냐하면 만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모두가 다 선하신 하나님 한 분께서 홀로! 하시는 일이라면정녕 그것이 그러하다면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하나님 자신의 세계 안에 왜 악이니 불행이니 비극이니 고통이니 질병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라는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더욱이불행 등등도 또한 모두 선하신 하나님그 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우리가 애써 정의니 선이니 하는 그런 것들을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무엇이 있겠느냐 라고 하는 그런 매우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요사이 젊은 세대들인 소위 
N세대라고들 하는 청소년들은 말하기를 <자신을 가장 모욕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제는 착한 애야!”라고 하는 말>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로, <착하다>라는 말이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매우 모독적인 말로만 들린다고들 하는데… 이런 논리가이런 질문의 문맥에서 보면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만일 이처럼 악이 난무하는 세상사들 속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작용하고 있다면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라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우리의 성서는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성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결코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는 아니 하였다즉 결코 <틈새의 신()>이론으로 맞서지는 아니 하였다또는 성서는 이러한 현상을 결단코 인간의 원죄(原罪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매우 진부한 생물학적 유전적 원죄이론으로 대답의 본질을 흐리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오늘 읽은 우리의 구약 본문에서는 두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요셉의 입을 빌려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즉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하여나로 하여금 노예로 팔려서 이리로 오도록 만드신 것입니다.”라고 5절 하반 절에서 말하고 있고 그리고 또 하나님은 큰 구원(救援)으로 형님들의 생명을 보존해주시고 또 형님들의 후손을 세상에 살아남게 하시기 위하여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곳에 노예로 팔려오게 하신 것입니다.”라고 7절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된 말씀은논의할 여지 없이, “생명을 구하시기 위하여!라는 말씀과 세상에 살아남게 하시기 위하여라는 말로 반복해서 선포된 그 말씀이다말하자면성서의 하나님은 본질상우리를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는 신()이 아니라우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시려고 하시는 신(), 심지어는 죄 없는 동생을 이방나라 노예 상에게 팔아넘기는 그런 반인륜(反 人倫)의 악을 이용하여서라도 인간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생명창조와 생명보존의 신()이시라는 그런 말이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의 채찍>으로 치고징계하고심판하고하시는 그것은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고난의 재앙을 마구 쏟으시는 그것은 결코 판을 위한 심판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하나님의 불완전함이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그것은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의 채찍>으로 치고징계하고심판하고하시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훈련(訓練)의 성격을 띤 징계일 뿐이라는 것이다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에게 있어서는심판이란 어디까지나 구원을 위한 예비 작업이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준비작업>일 뿐이라는 것이다말하자면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애급 땅으로 인신매매(人身賣買)되어 종으로 팔려가서 그런 잔인한 불행에 빠지도록 하신 것은요셉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야곱 가문과 요셉 가문을 저 가나안 땅에 임한 그 살육적인 흉년으로부터 살려내시기 위한!! 구원경륜의 한 예비조치(豫備措置)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살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이러한 성서의 주장은 소위 말하는 <자연선택적 진화론>(호킹밀 등등의 무신론자들의 주장)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그렇다
이 신비한 비밀을 알리려고 필자는 감히 이러한 성서신앙으로 무신론자들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성서의 하나님은 비록 인간의 눈에는 심판의 하나님으로도 보이시기는 하지만그러나실제로는, 제대로 그 의미를 잘 들여다보면그 하나님은 전적으로 구원의 하나님이실 뿐이라는 그런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믿는 성서의 하나님즉 창조주 하나님은본질상!, 생명창조와 생명보존의 신()이시지 결코그 무슨우리를 심판하시려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숨겨진 죄들을 샅샅이 다 찾아내어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를 심판하시는 그런 심판의 신()은 결코 아니시라는 것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성서의 고유한 중심적 증언이다요셉 이야기는 바로 이 사실을 증언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성서언어다.


요셉을 애급에 노예로 팔려가도록 하시는 하나님
그러나이 하나님은 잘 알고 보니 야곱 가문 전체를 살리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요셉을 애급에 종으로 팔아넘기는 <고난을 통한 교육방법>으로 전체 야곱 가문보다 <앞서내려가게까지 하셔서 야곱 가문인 이스라엘을 저 가나안 땅의 살인적 흉년의 기근으로부터 구원해 내시려 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시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참 신앙인은
이 세상의 이러한 잔혹한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그 배후에서 활발하게 움직이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그 구원섭리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eyes of faith)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의 저주처럼 느껴지는 참혹한 불행 속에서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 불행 한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셔서 그 불행을 매개로 하여서라도우리를 철저히 훈련시키신 다음그 불행을 극적인 방법으로 행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그 역설적(逆說的구원섭리를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역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오직 한 가지의 뜻이란죄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에 대한 용서요 회개하는 인간에 대한 구원이라는 것을 성서는 줄기차게 증언하여 왔다실로우리의 이 인간세계는 이 득세하는정말 세상살 맛이 안 나는그야말로 그 미래가 불확실한 세계다그러나 하나님은결단코!, 이 인간세계를 악하다 하여 단념하시거나 포기하시는 분은 아니시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그것을 웅변한다창조주 하나님은 이 세상을그가 창조하신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인간들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천문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137억년 동안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 구원의 때(카이로스)를 결코 포기함이 없이 기다리신 것이라 하겠다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복음이다요셉 이야기는 바로 이 복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하겠다.


신약성서의 요한복음도 이러한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의 본질을 증언하여 말하기를
,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결단코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그를 통하여 이 세상이 구원받도록 하시기 위함이다.”(요 3:17)라고 증언하였던 것이다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시려는 것(요한 6:39)이 하나님의 뜻이요 동시에 그의 아들의 뜻이라고 증언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피를 나눈 형제까지도 노예로 팔아넘기는 그런 반인륜(反人倫)의 이 인간세계라 할지라도 결단코 단념하시거나 포기하시거나 하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그런 악의 역사를 고난의 채찍으로 연단시키셔서”(호 2:6-7[8-9],14-15[16-17]) 구원의 역사로 변화시키실 뿐이다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다(창 50:20).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다(출 34:6). 우리의 하나님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같은 혈육의 동생까지도 노예로 팔아넘기는 이 잔악한 형제갈등의 반윤리적 악행 속에서도 오히려 사랑의 생명이 싹트도록 하시는 것이다그리고는 찢고 싸우고 전쟁하며 자살 테러를 식은 죽 먹듯 하면서 핵폭탄을 던져서라도 다함께 자멸하자라면서 자살 사이트를 크게 열어놓고 죽음을 독려하면서 다함께 망할 그 종말을 향하여 빠른 속도로 경쟁하듯이 달려가는 저 고삐 풀린 말 같은 무지한 인생들의 그 절망적 미래를 한사코한사코한사코막으시고 <생명 사랑의 묘약(妙藥)>으로 치유해 주시는 그런 분이 성서의 하나님이시다이분이이 아버지(어머니) 하나님이!! 바로 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그 하나님이시다아버지는 아들을 정죄하지 않으신다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네 하나님의 자녀들을 심판하시지 않으신다물론 이 말은 신의 심판이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심판은 있으나 하나님의 심판은예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성서를 다시 읽으면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원을 위한 연단교육의 예비 작업일 뿐임을 알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그 아버지(또는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식들인 우리들을 사랑의 채찍으로 교육-연단시키셔서 결국은 우리 모두를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살리셔서>(요한 6:38-39!!기어이!!! 구원해내시고야 마실 것이다그러므로 인간의 죄에 대한 [죽음의심판(롬 5:12)은 인간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보응이 아니라인간행위가 불러들인 <부메랑>(boomerang) 형식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일 뿐(갈 5: 15; 6:9)이라고 하겠다.